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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조(派祖) 절도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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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사공(節度使公) 휘 대손(諱 大孫) 단소(壇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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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절도사박공 휘 대손 실기(北平節度使 諱 大孫 實記) 碑】

 

 

 

北平節度使 朴公諱大孫 實記

公의 姓은 朴이오 諱는 大孫이시니 密陽人이라文科集賢殿副提學 贈左贊成 號蘿山耕叟 剛生의 孫이오 文科 贈左贊成 切問의 長子요 忠貞公淸齋 審問의侄이오 文忠公 陽村權近의 二男文景公止齋踶의 女婿也라 公이 性本剛毅하사 常有盡忠殉國之志시러라端廟朝에 以侍從으로 出補北平이러시니 丁丑에 聞上王賓天 之報하시고 投其印綬하시고 伏地痛哭이라 遂遺言於六子及女婿崔長孫李克增柳龜淵閔孝達權推等曰 顧命諸臣이 幷被慘禍하니 如此無倫之世에 不可仕宦이니 如等은 須退仕隱居하야 勿負吾言하라하시고 言訖에 遂雍容就義하시다 子樑은 府使요 根은 判決事요 權은 郞階요 枰은 縣令이요 桓은 縣監이오 楹은 僉正이니 亦棄官遯跡終世하니라 公의 墓道文에 有曰 惟公節義 炳如日星이라 其誰與比오 首陽爲儔라하니라 英廟朝庚午에 以士林公議로 配享于公州東鶴寺肅慕殿廡하니라.

此實記載於端廟忠義錄卷三

 

設壇趣旨文

國分南北하야 往來杜絶이 三十八年이라雖踏天下나 公之墓所를 不能參拜하니 嗚乎通哉라追慕之情을 豈敢勝言이리오 晩時之嘆을 難克堪耐나 裔孫宗族이 集小丹誠하야 祖先塋下에卜擇吉之하야 謹設祭壇하오니 伏惟尊靈은 是臨是憑하시고 遠近子孫은 永世是保이어다.

新羅紀元 二千四十年

西紀一千九百八十三年  癸亥八月   日

密陽朴氏 節度使公派花樹會 謹竪

(墓在 平南中和郡海鴨面睦里 定夷山庚坐)

 

 

※ 북평절도사(北平節度使) 박공휘대손(朴公諱大孫) 실기(實記)

공의 성은 박이요 휘는 대손(大孫)이시니 밀양인(密陽人)이라 문과집현전부제학(文科集賢殿副提學) 증좌찬성(贈左贊成) 호(號) 나산경수(羅山耕叟) 강생(剛生)의 손(孫)이요 문과증좌찬성(文科贈左贊成) 절문(切問)의 장자(長子)요 충정공(忠貞公) 청재(淸齋) 심문(審問)의 조카요 문충공(文忠公)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2남 문경공(文景公) 지재제(止齋踶)의 사위이다. 공이 성격이 본래 강직하고 굴하지 않아 항상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마음이 있었다. 단묘조(端廟朝)에 시종으로 북평의 외직에 임명되어 나가니, 정축년에 상왕의 비보를 듣고서 자기의 인수 [인수(印綬) : 신분이나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관인(官印)을 몸에 차기 위한 끈.](印綬)를 던지고 땅에 업드려 통곡하니라. 마침내 여섯 아들과 사위 최장손(崔長孫) 이극증(李克增) 유귀연(柳龜淵) 민효달(閔孝達) 권추(權推) 등에게 이르기를 고명제신 [고명제신(顧命諸臣) : 임금이 신하에게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함.](顧命諸臣)이 모두 참화(慘禍)를 당하니 이 무륜(無倫) [무륜(無倫) : 인륜이 없음.]한 세상에서 벼슬이 불가하니 너희는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隱居)할 것이며, 나의 말을 저버리지 말아라 하고는 마침내 조용히 의로운 길로 나아가셨다. 아들 량(樑)은 부사(府使)요, 근(根)은 판결사(判決事)요 권(權)은 낭계(郎階)요 평(枰)은 현령(縣令)이요 환(桓)은 현감(縣監)이요 영(楹)은 첨정(僉正)이니 또한 벼슬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 공(公)의 묘도문(墓道文)에 이르기를 공(公)의 절의를 생각하면 밝기가 일성(日星) 같으니 그 누구와 비교하리오 수양위주 [수양위주(首陽爲鑄): 수양산의 백이(伯夷) 와 숙제(叔齊)의 절의에 필적되다. ](首陽爲鑄)라 하니라. 영묘조(英廟朝) 경오(庚午)년에 여러 사림(士林)들이 의논하여 공주의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에 배향(配享)되었다.

이 실기는 단묘충의록 3권에 실려있다.(此實記載於端廟忠義錄卷三)

 

설단 취지문(設壇 趣旨文)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왕래가 두절됨이 38년이라 비록 같은 하늘아래에 있으나 공의 묘소를 참배할 수 없으니 오호통재라 추모의 정을 어찌 말로다하리오 만시지탄을 감내하기 어려우나 후손 종족(宗族)이 모여 작은 정성으로 조상의 선영에 길지(吉地)를 정하여 삼가 설단(設壇)하오니 삼가 존령(尊靈)께서는 임하시어 모든 자손을 영원토록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신라기원 2040년(서기 1983년) 계해(癸亥) 8월

밀양박씨절도사공파화수회(密陽朴氏節度使公 花樹會) 근수(謹竪)

(묘위치 평남중화군해압면목제리 정이산 경좌(庚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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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숙모전(東鶴寺 肅慕殿) - 절도사공 배향(配享)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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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서무 절도사공 위패(東鶴寺 西廡 節度使公 位牌)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자락이 자리잡은 동학사(東鶴寺) 경내에 있다. 단종(1441~1457)과 단종의 죽음을 막기 위해 노력한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숙모전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충절과 애통함이 서려 있다.1455년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김시습은 머리를 깎고 동학사에 와 통곡을 하였다. 다음 해 사육신이 참수를 당한 뒤에는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 언덕에 매장하고 동학사로 다시 돌아와 단을 만들고 제사하였다. 2년 뒤 세조가 동학사에 들렸다가 이 내력을 듣고 자신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280명을 위해 초혼각을 짓고 초혼제를 지냈다. 이 초혼각은 1728년(영조 4)에 불에 타 1827년(순조 27)에 다시 세웠으며, 1904년(고종 41)에 중건하면서 숙모전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현재 매년 봄과 가을에 추모제를 지낸다. 숙모전 내부에는 단종과 단종비 정순왕후를 비롯해 동무에는 엄홍도를 비롯해 48위를 모시고, 서무에는 사육신을 비롯해 48위를 모시고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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